헌마공신김만일기념
헌마공신 김만일
헌마공신 김만일의 생애

“ 이제부터 공을 헌마공신이라 부르겠노라.”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22세손, 조선개국 일등공신 의정부좌찬성 익화군 충민공 김인찬의 8세손이며, 김인찬의 셋째 아들인 김검룡(입도시조)의 7세손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출신인 김만일은 탁월한 목축기술과 위기극복 능력으로 수많은 양마를 길러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천 필의 전마 등을 도맡아 감당해내며, 국난극복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김만일은 1594, 1612, 1618, 1620년 연이어 전마를 헌마하니 광해 임금이 직접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정2품)에 임명하였다.


1622년에는 각별히 키운 말을 임금에게 올려 보냈고, 1624년부터 5년간 양마 수백 필을 헌마하는 등 1천3백여 필을 헌마한 공로로 1628년에는 종1품 숭정대부에 제수되어, 헌마공신으로 길이길이 칭송되고 있다.

이후 김만일의 후손들은 230여 년 동안(1659~1895) 제주산마감목관(83명, 종6품 현감과 동급)직을 맡아 산마장을 운영하면서, 왕이 타는 어승마와 전마는 물론, 양마 산출에 진력함으로써, 국가 전마의 공급처로서의 기능을 다했다.
김만일이 준마를 길러 나라에 헌마한 때부터 무려 300년가량 한 집안에서 국방의 기초가 됐던 전마를 도맡아 감당했던 것이다.
이는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인 공훈이라 할 수 있다.
김만일에 이어 후손들까지 나라에 올려 보낸 말은 2만여 필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생가터

헌마공신 김만일 생가터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549-2
헌마공신 김만일 생가터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549-2
김만일 생가터는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549-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김만일의 아버지인 김이홍이 수망리에 살다가 1550년경에 내려와 정착한 곳이다.
헌마공신 김만일 가문이 의귀리에 정착하게 된 연유는 ‘반득전 혈산의 유전’과 관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호종단(胡宗旦·고종달)이라는 사람이 제주에 와서 지맥 또는 혈맥을 끊으러 다니던 중에 우연히 김만일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자신의 묏자리를 정해주었는데, 그곳이 ‘명당 중의 명당’이라서 훌륭한 후손이 태어나 부와 명성을 얻고 번성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호종단은 김보에게 밟았던 자리에 아버지를 안장하고, 이후에 비둘기가 날아가 앉은 곳을 찾아 집을 지어 살라고 하였다. 그러면 국운이 다할 때까지 가운을 지탱하리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리하여 김보는 이곳에 아버지를 안장하여 ‘반득전 혈산’이 되었고, 김보의 아들인 김이홍(金利弘)은 비둘기가 날아간 곳을 찾아 집을 지으니, 의귀리에 종가 택지를 정한 연유가 되었다.
김만일은 바로 비둘기가 날아가 앉았던 곳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김만일 생가는 1948년 4·3 당시 불타버렸으나, 아직도 주변에는 생가터의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생가터와 주변 과수원 일대에는 기단석, 주춧돌, 연자방아, 현무암질 석재, 기와편, 분청사기, 백자, 도기 등 유물이 산재해 있다.
이로 보아 그 당시 생가의 모습을 대강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전 제주도의 경우에 기와집은 일부 관아 건물에 국한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김만일 생가터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단석과 기와 등은 그 당시 김만일 집안의 재력과 위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묘역

헌마공신 김만일 묘역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773번지
헌마공신 김만일 묘역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773번지
의귀리 1773번지 속칭 서위남모루에 자리한다. ‘김만일 묘역’은 2009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봉분 앞에 서 있는 문인석 등으로 인한 문화재적 가치와 함께 위기에 처한 나라에 말을 바쳐 국난극복에 기여했다는 역사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만일의 동자석과 문인석은 제주도 최초의 석상이다.
김만일 무덤의 문인석과 동자석은 제주도 무덤 석상의 양식으로는 가장 오래된 고형(古形)에 속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무덤 석상 가운데는 제일 연대가 앞선다. 김만일이 생을 마친 해가 1632년이니, 2021년 현재 동자석의 나이는 389년이나 되었다.
현재 김만일 무덤에는 문인석 2기만 마주보고 서 있다. 제주도 최초의 제주형 동자석은 안타깝게도 현재 도난 된 상태로, 두 번째 잃어버렸다. 이 동자석은 2001년 처음 도난당했다가 2004년 여름 마침내 제주경찰서 강력반에 의해 경기도 모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을 찾아올 수 있었다.
도난 되었다가 돌아온 김만일 무덤의 석상은 동자석 2기와 아버지 이홍공의 문인석 2기였다.
2005년 4월, 세워둔 4기의 석상이 다시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재도난 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 여태까지 석상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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